1871년 독일 통일 및 제국의 출범
유럽의 맹주가 된 프로이센은 프랑스마저 쉽게 제압했다. 1871년 1월 29일 파리가 함락되어 베르사유 궁전에서 항복을 받아낸다. 독일의 첫 통일 황제가 된 카이저 빌헬름 1세는 비스마르크를 첫 수상으로 임명하고 통일 헌법을 만들었다.
코블렌츠의 도이체스 에크에 그의 대형 기마상이 있다.
제2제국 독일 제국 Deutsches Kaiserreich은 다른 유럽 열강에 비해 근대 국가의 수립이 몇 발 뒤졌던 독일의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국가의 내실을 다질 기간이 없었기에 전적으로 프로이센의 강력한 군사력과 비스마르크의 외교적 수완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카이저 빌헬름 1세 사후 비스마르크도 물러나자 독일 제국은 내공의 부족을 드러내며 곧바로 위기에 빠진다.
1888년 빌헬름 2세 즉위
새 황제 빌헬름 2세는 점차 제국주의에 함몰되어 무리한 팽창정책을 펼친다. 이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자극하여 세 나라가 삼국협상을 맺는다.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삼국협상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삼국동맹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곧 이탈하고 사실상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외교적으로 고립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영토 분쟁으로 전쟁이 발발하고 각국의 동맹인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이 차례로 참전하며 세계대전이 되었다. 이후 독일 잠수함이 미국 상선을 공격하자 미국도 연합군에 가담하였다. 결국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1918년 항복을 선언한다. 빌헬름 2세는 폐위되고 네덜란드로 망명하였다.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 출범, 바우하우스 설립
바이마르에서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한 민주적 헌법이 통과되었다. 바이마르 헌법을 바탕으로 출범한 민주 공화국이기에 바이마르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전후 막대한 배상 문제로 독일의 경제는 매우 궁핍한 상황이었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적인 시대정신은 전혀 빛을 발할 수 없었다. 같은 해, 바이마르에서 바우하우스가 설립되었다.
1923년 뮌헨 폭등
히틀러는 1923년 한 비어홀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의 좌파 정부에 반대하는 우파 혁명인 뮌헨 폭동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뛰어난 언변으로 주목받고, 수감 중 저술한 <나의 투쟁>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큰 인기를 얻는다. 9개월 만에 출소한 히틀러의 나치당은 일약 유명 세력이 되었다.
1933년 히틀러가 수상으로 취임
1932년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선거에서 히틀러는 힌덴부르크에 이어 많은 득표를 거뒀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한다. 히틀러는 취임 직후 아우토반건설 등 전국적인 사업을 밀어붙인다.
1934년 히틀러가 총통으로 취임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고령으로 사망하자 히틀러는 '수권법'을 만들어 선거 없이 대통령직을 계승하였다.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모두 갖는 총통이 되었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막을 내린다. 제3제국 Drittes Reich은 히틀러 집권 기간의 독재국가를 지칭한다. 실제로 히틀러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제국을 꿈꾸었다. 그가 남긴 뉘른베르크의 나치 전당대회장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나치가 패망하면서 제3제국도 종말을 고하였다.
1935년 베르사유 조약 파기
히틀러는 군비를 확장한 뒤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 협정인 베르사유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다. 궁핍의 원인이었던 과도한 전후 배상을 거부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1936년 하계, 동계 올림픽 개최
나치는 독일의 힘을 과시하고자 1936년 베를린에서 하계 올림픽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동계 올림픽을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독일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1938년 오스트리아 합병
나치는 영토 확장의 야욕을 드러내며 오스트리아를 합병한다. 사실상 무력 병합이었으나 오스트리아 국민은 이를 열렬히 환영하였다.
1939~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독일이 소련과 상호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 뒤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폴란드의 항복 후 1940년 독일은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프랑스를 침공해 2개월 만에 파리를 점령하고 꼭두각시 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마지막 연합국인 영국이 섬나라의 이점을 살려 끝까지 항전하였고, 초조해진 히틀러는 물자 조달을 위해 1941년 동맹국인 소련을 침공하기에 이른다. 미국까지 참전하면서 독일은 영국/소련/미국을 홀로 상대하는 지경이 되었다. 1945년 2월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으로 사실상 전쟁은 끝났다. 이후 무의미한 저항이 이어지다가 5월 1일 히틀러는 자살하였고, 5월 7일 나치는 항복하였다.
1945년 포츠담 회담
포츠담의 체칠리엔호프 궁전에서 연합국 지도자들이 모여 전후 패전국의 처리를 결정하였다. 이 자리에서 독일의 전후 배상과 분할 통치가 결정된다.
1949년 분단국가 수립
미국/영국/프랑스가 점령하던 서독이 먼저 독자적인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곧바로 동독도 소련의 점령 하에 공화국을 선포하며 공식적으로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되었다. 수도 베를린도 동서로 분단되었고, 서독은 본에 임시 수도를 두었다.
1950년대 라인 강의 기적
서독은 전후 서방 세계와 견줄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하여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1961년 베를린 장벽 설치
동서독의 경제 격차가 심해지자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급증했다. 이에 동독 정부는 하룻밤 사이에 베를린 장벽을 설치하여 주민의 이탈을 막았다.
1972년 뮌헨 올림픽 개최
서독은 뮌헨 올림픽을 개최하여 전후 눈부시게 발전한 국력을 뽐냈다. 하지만 '검은 9월 사건'으로 이스라엘 선수단이 테러에 희생된 불미스러운 올림픽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올림픽주경기장 지역은 현재 올림픽 공원으로 개방되어 있다.
1989년 동독의 자유 운동과 베를린 장벽 붕괴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에서 시작된 '월요데모' 기도회가 동독 전역으로 번져 대규모 저항 운동이 벌어졌다. 동독 정부는 민중의 외침에 한발 물러나 '여행의 자유'를 허가하였다. 이에 동베를린의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들었고, 동독의 국경수비대가 제지하지 않자 장벽을 부수어버렸다.
1990년 독일 통일
9월에 완전한 통일에 합의하고 10월 3일 통일의 축제'가 열려 공식적으로 하나의 독일이 탄생하였다.
1993년 유럽연합 창립
통일 독일은 프랑스 등과 함께 유럽연합 EU 창립을 선도하였다. 11월 1일 EU가 시작되었다.
1998년 유럽중앙은행 설립
EU의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유럽중앙은행이 프랑크푸르트 유로타워에 설립되었다.
1999년 유로화 도입
1월 1일부터 유럽 단일 통화인 유로화가 도입되어 기존의 마르크화가 공식 폐지되었다.
2002년 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 완공
파괴되었던 구 제국의회 의사당을 재건하여 연방의회 의사당을 완공했다. 이로써 서독의 임시 수도인 본의 기능은 공식적으로 마감되었고, 베를린이 통일 독일의 명실상부한 수도가 되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개최
독일이 통일 후 처음 개최한 세계적 행사다.
통일 독일의 힘을 세계에 보여주었다.